충격적이었던 기아 EV3의 의미
충격적이었다. EV3는 앞으로 여러가지 변화를 가져올 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정리해 보았다. 전기차 대중화의 시대를, 그리고 우리 나라 전기차의 경쟁력을 단숨에 끌어올릴 것이다. 또한 현기차의 전기차 전략을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요약해 보았다.
1. 전기차 대중화 시대를 열다.
물론 EV3는 대중 전기차 시대를 여는 국내 브랜드 최초의 모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주로 소형 SUV 최초의 순수 전기차 전용 모델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조금을 포함할 때 가격 접근성이 확연히 좋아졌다는 점을 그 주된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실제 시승 결과는 그 이상이었다. 왜냐 하면 대중적 관점에서 볼 때 제품 자체가 매력적인 면을 두루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우수한 승차감을 비롯한 자동차 자체로서의 완성도였던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전기차들이 친환경성이나 혁신성 등 중요한 사회적 기술적 가치는 강조하지만 대중적인 시각에서 다소 거리가 있었던 것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가격대에서도 전기차 전용 플랫폼 기반 모델들은 대중적인 가격대를 벗어나 있었던 것, 그리고 효율성 또는 고성능을 위하여 승차감 등 보편적인 구매 결정 요소에서 일정 부분 타협점이 있었던 것. 그런데 이런 전기차의 대중들과의 괴리를 EV3가 본격적으로 해결한 것이다.
따라서, EV3 이후부터는 대중적 주류 고객들이 전기차로 넘어오기 위하여 이전과 다른 기준으로 자동차를 평가 – 선택해야 한다는 암묵적 강요를 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즉, 대중의 관점으로 전기차를 고를 수 있는 진정한 대중화 시대가 열린 것이다.
2. 파생형 전기차가 불필요해졌다.
EV3의 등장으로 직접적으로 피해를 받을 모델은 기아 니로 EV와 현대 코나 일렉트릭이다. EV3와 비교하여 약간 큰 차체를 제외하고는 제원에서 동등 혹은 소폭 열세인데도 가격은 비싸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니로나 코나와 같은 파생형 전기차는 EV6나 아이오닉5에 비하여 접근성이 좋은 가격으로 하위 라인업을 이룬다는 것이 고객의 관점에서는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였다. 물론 자동차 제작사에게는 니로처럼 하이브리드부터 전기차까지 친환경 파워트레인을 모두 망라하는 친환경 전문 모델로서 중요한 브랜드 이미지적 가치를 갖는다는 점, 그리고 전 세계 시장에 여건이 맞는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사용하는 EV3가 파생형 전기차보다 우월한 완성도와 상품성, 그리고 심지어는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고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파생형 전기차를 담당하던 모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본격적인 순수 전기차는 EV3 이상의 모델에게 맡겨두고 그 아래 시장에 집중하는 것이다. 아직 세상의 거의 모든 시장은 내연기관이 주류다. 그리고 그 위에 마일드 하이브리드를 시작으로 PHEV까지 아직 시장에서 주류 모델로서 전동화의 마중물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뜻이다.
특히 파생형 전기차의 자리를 EV3와 같은 로우급 순수 전기차 플랫폼 기반 전기차에게 넘겨준 지금, PHEV 시장에서의 역할이 새롭게 떠오른다. 중국을 비롯하여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주춤한 사이 PHEV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그리고 니로나 코나는 선진국 시장까지 커버하는 글로벌 모델이다.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물론 캐스퍼 일렉트릭처럼 전기차 시장의 엔트리 포지션은 여전히 파생형 전기차가 담당하는 길은 당분간 열어두자.
3. 브랜드가 된 E-GMP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e-GMP는 800볼트 아키텍쳐 등 메인스트림 브랜드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던 기술로 유명했던 기술 집약형 전기차 플랫폼이었다. 그러나 지난 EV3 테크데이를 통하여 직접 확인했듯이 이제 e-GMP는 더 이상 기술적 구성으로 정의되는 플랫폼의 이름이 아니다. 400볼트 - 전륜 구동 기반이라도 순수 전기차용 플랫폼이라면 현대차그룹은 e-GMP로 부르기로 정한 것이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이것은 e-GMP가 브랜드가 되었다는 뜻이다. 즉, 기술적 요소들로 정의되는 플랫폼의 명칭이 아니라 현대차의 순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제부터 현대, 기아, 제네시스는 어떤 기술적 구성이냐에 관계 없이 자신이 개발한 순수 전기차 플랫폼은 모두 e-GMP라는 브랜드로 지칭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단기적으로는 아이오닉5와 EV6 등이 이룩한 중상위 시장에서의 업적이 EV3-4-5 등의 대중형 전기차 모델에게 후광 효과를 통하여 지원 사격을 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e-GMP의 브랜드화는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하는 중요한 수순이 된다. 그것은 플랫폼 자체가 상품이 되는 것이다. 순수 전기차 플랫폼을 직접 개발할 수 있는 자동차 제작사들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점, 그래서 그 이외의 자동차 제작사들은 이들로부터 플랫폼을 공급받아 전기차를 제작해야 할 것이라는 예측을 바탕으로 할 때 현대차그룹은 플랫폼 공급 업체로서 이른바 ‘티어 0’의 역할도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렇듯 EV3의 등장은 단순한 모델 하나의 출시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나라 전기차 시장과 산업의 밀도와 내실, 그리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까지도 가져올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글 / 나윤석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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