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중요한 운전석의 인터페이스 디자인
자동차를 운전하다 보면 차량의 주행성능은 차량의 사용성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가속력 이나 제동력이 잘 확보된 차량은 운전하기에도 편안할 뿐 아니라, 사고를 예방하는 예방 안전성에서도 높은 수준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차량의 예방 안전성을 높여주는 요소는 이런 기구적 요소 외에도 예를 들어 피로감을 적게 주는 좌석, 선명한 계기판, 그리고 조작하기 쉬운 버튼 등 전문 용어로 인터페이스(interface) 라고 불리는 운전 환경이 사실은 절대적인 비중을 가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터페이스는 운전석 환경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요소들은 시야가 잘 확보된 유리창 이라든지, 조작감이 좋은 레버 류, 그리고 읽기 쉬운 계기판이나 누리기 쉬운 버튼 등 그야말로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커다란 부피의 좌석까지 다양합니다.
그동안 운전해 보거나 소유해 본 차량들은 다양합니다만, 그들 중 기억에 남는 차 하나는 1997년 11월부터 몇 년 동안 탔던 레간자는 쥬지아로 디자인의 차체가 마음에 들었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운전석에 앉아서 운전하면서 라디오를 켜려고 무심코 둥근 볼륨 노브를 눌러보았지만, 눌리지 않을뿐더러 라디오도 켜지지 않았습니다. 그 시기에는 대개의 자동차 라디오나 오디오는 볼륨 노브가 전원 버튼을 겸하는 방식으로 설계되는게 보통이어서 레간자도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디오 패널을 들여다 보니 둥근 볼륨 노브 옆에 정말로 쌀 한 톨 크기의 전원 버튼이 있는 것이 보여서 정말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자제품이나 휴대폰 등은 버튼이 작고 섬세하게 만들어지는 게 당연합니다만 운전 중에 조작해야 하는 자동차의 오디오는 쌀 한 톨 크기의 버튼을 누르려면 시선을 돌려서 위치를 확인하고 눌러야 하기 때문에 자칫 전방 주시 태만을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자동차용 오디오는 굳이 시선을 돌리지 않더라도 손으로 어림 잡아 눌러도 되는 직관적인 크기와 위치에 음량 조절 겸 전원 버튼을 만든 걸로 보입니다. 그런데, 레간자가 나온 지 3년도 안돼서 후속 모델 형식으로 나온 매그너스에서는 그런 문제를 모두 고쳐 놓았습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 다른 차들은 모두 오디오 전원 버튼은 큰 노브로 만들어 놓아서 굳이 오디오 패널에 시선을 주지 않더라도 켤 수 있는 인터페이스였고,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EF 소나타의 오디오 역시 직관적인 디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운전 중에 조작해야 하는 것은 오디오 이외에도 공조 장치가 더 높은 빈도를 가집니다. 여름에는 에어컨을, 그리고 겨울에는 히터를 작동시켜야 하기 때문이고, 온도와 바람의 방향 등 조절해야 할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 시기의 레간자에서도 전자식 공조 패널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온도를 올리고 내일 때 한 번 누를 때마다 0.5도씩 올라가는 버튼은 시각적으로는 첨단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운전 중에 조작하려면 여러 번 눌러야 하므로 번거롭습니다. 그런데 EF 쏘나타의 공조기 사진을 보면 오른쪽의 둥근 노브를 돌리면 손쉽게 온도 조절이 됩니다.
직관적이고 손쉬운 온도 조절 인터페이스는 1995년에 나왔던 W210 벤츠 E-클래스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W210 벤츠 E-클래스의 공조 패널은 정말 직관적입니다. 운전석 쪽 온도는 왼쪽 수직 노브를 위아래로 움직이면 되고, 풍량도 둥근 다이얼 노브를 단계에 맞추어 돌리면 됩니다. 굳이 쳐다보지 않아도 조수석 쪽 온도는 오른쪽 수직 노브를 위아래로 움직이면 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자동차 컨트롤 인터페이스가 디지털 디스플레이 패널로 바뀌면서 조작을 하려면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고 그곳을 정확히 터치해야 합니다. 게다가 디스플레이 패널의 글씨들이 의외로 작습니다.
여기 사진에서 보여드리는 W223의 디지털 시계는 운전 중에 시간을 보려면 시계가 어디에 있는지 한참동안 찾아 헤메야 합니다. 게다가 시계의 글씨 크기가 의외로 작고 대비가 선명하지 않아서 한참동안 들여다 보아야 시간이 보입니다. 아우토반을 달리면서 이런 시계를 읽으려면 시력이 좋아야 할지 모릅니다. 같은 회사의 차 인데도 W210과 W223은 큰 차이를 보입니다.
여기 보여드리는 표는 눈과 글자 사이의 거리에 따라 글자 크기를 정하는 인간공학적 기준의 자료입니다. 이걸 기준으로 하면 운전석에 앉은 운전자의 안구에서 센터 페시아 사이의 거리가 대략 900mm쯤 되므로, W223의 디지털 시계 숫자 크기는 지금의 것보다 두배쯤 커야 쉽게 읽힐 걸로 보입니다.
물론 표의 내용은 흰 바탕에 검은 글씨, 즉 가장 대비가 큰 조건의 기준입니다. 과거의 자동차용 디지털 시계는 선명한 VFD 방식이 많았지만, 요즘은 아날로그 방식이거나 마치 인쇄된 느낌의 디자인도 많습니다.
그런데 글씨 이외에도 예방안전성을 위한 인터페이스는 의외로 사소한 부분에서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반사 눈부심이 적은 시야의 확보입니다.
앞 유리창의 각도가 낮아지는 게 요즘의 공기역학적 디자인 이므로 낮게 누운 앞 유리에 생길 수도 있는 반사 잔영을 방지하는 디자인은 매우 중요합니다.
디자이너가 번쩍거리게 멋진 형태로 디자인 해놓는 것까지는 좋지만, 정작 앞 유리에 반짝이는 이미지가 반사돼서 보인다면 그건 정말로 좋은 인터페이스의 디자인은 아닐 것입니다.
심지어 옆 유리창에도 반짝거리는 환기구의 잔영이 비쳐서 리어 뷰 미러를 볼 때마다 헷갈린다면 그건 근본적으로 잘못된 디자인이 틀림 없습니다.
게다가 요즘에는 실내에 앰비언트 라이트라고 하는 무드 조명이 많이 쓰입니다만, 밤에도 그 조명의 영향으로 환기구의 잔영이 측면 유리창의 시야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합니다. 아마 이 차를 몰아 보신 분들은 같은 경험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사진에서처럼 조명 자체가 비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환기구의 각도나 위치를 다르게 디자인했다면 저렇게 반짝거리는 환기구 반사 잔영이 시야를 방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걸로 보입니다. 낮이나 밤이나 환기구의 반사 잔영 때문에 시야가 혼란스러운 운전 환경이 여러가지 안전 테스트를 통과해서 양산이 결정됐다는 사실이 번쩍거리는 화려한 환기구 디자인이 안전한 인터페이스보다 중요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터페이스는 디자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안전과 설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직관적으로 쉽게 보고 인지하고 조작할 수 있는 디자인은 단지 번쩍거리고 고급스러운 디자인과는 또 다른, 근본적인 안전과 편리성을 위한 개념이라고 할 것입니다.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그리고 차량의 예방 안전 관련 테스트 업무의 협업이 잘 이루어져서 인터페이스의 개념이 잘 반영된 디자인이 개발된다면 쌀 한 톨 만한 전원 버튼이나 시계 숫자 표시, 낮이나 밤이나 환기구의 반사 잔영에 시달려야 하는 운전 환경을 가진 차는 만들어지지 않을 지 모릅니다.
글 / 구상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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