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 전기차 시대에 소비자는 무엇을 원할까?
지금 자동차업계의 지형은 2015년 폭스바겐 디젤 스캔들 이전과는 크게 다르다. 토요타는 여전히 1,000만 대 규모로 자리하고 있지만 폭스바겐그룹은 현대차그룹과 경쟁하고 있다. 자동차를 산업화했던 포드와 GM의 존재감은 크게 약화했다. 그 사이 중국 업체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 그런 상황을 만든 트리거는 테슬라다. 테슬라 때문에 중국 전기차의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다. 복잡하지만 결국은 기술은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명제는 지금도 통한다. 제품이 곧 마케팅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자동차회사는 신차로 먹고산다. 어떤 신차로 어필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현대차그룹이 일련의 테크데이를 통해 선보이는 신기술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관련 내용과 전기차 시대의 상품성에 관한 전망을 정리한다.
글 / 채영석 (글로벌오토뉴스 국장)
현대차그룹이 최근 테크데이라는 행사를 늘리고 있다. 2022년 5월에는 미래 항공모빌리티 비전을제시하는 AAM테크데이를, 9월에는 PBV(목적기반자동차)와 관련한 UX테크데이를 개최했다. 2023년 6월에는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오픈이노베이션 테크데이를, 7월에는 나노소재를 기반으로 개발 중인 다양한 기술을 소개하는 나노테크데이를, 11월 유니휠 테크데이에서는 전기차의 주요 구동부품을 휠 내부로 통합해 공간을 확대하는 유니버설 휠이라는 기능 통합형 휠 구동 시스템을 선보였다. 신형 전기차를 출시하면서 새롭게 채용된 기술을 별도로 소개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다.
21세기 초부터 유럽 자동차회사들이 개최한 미디어 대상 기술 세미나에 많이 참석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무엇보다 단지 발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엔지니어들과 직접 현장에서 질의 응답하는 자리는 기자의 입장에서는 좋은 내용을 습득할 기회였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 자동차회사 관계자들에게도 이런 기회를 만드는 것이 좋지 않으냐는 의견을 피력했었다.
그것이 전기차 시대를 맞아 실현되고 있다. 물론 현대차그룹은 R&D 협력사 테크데이를 매년 봄가을 두 차례씩 개최해 오고 있다. 말 그대로 공급업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벤트다. 때에 따라서는 경쟁업체들의 모델을 티어다운해 기술 트렌드를 확인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기술적인 내용을 미디어에 소개하는 이런 행사는 주로 유럽 자동차회사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었다. 그만큼 내연기관차 시대의 기술 주도권을 유럽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전기차 시대를 맞아 달라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과거만큼 이런 이벤트가 활발하지는 않다. 그것을 온라인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실물을 마주하고 직접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할 수 있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전기차 시대의 기술은 테슬라가 주도하고 있다. 자율주행을 시작으로 생산기술혁신,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모두 테슬라가 선도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이 그 결과로 시장까지 모두 테슬라가 장악한다는 보장은 없다.
자율주행은 인공지능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인공지능이라는 기술 구현이 모든 영역에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는 데는 많은 과제가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 생산기술 혁신도 테슬라가 기가 캐스팅과 언박스드 프로세스 등을 제시하며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차만들기를 해온 전통적인 자동차회사들은 그에 대해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생신 기술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 부문에서는 중국업체들의 도전이 거세다 화웨이가 7나노 반도체를 개발하는 등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레거시 자동차업체들의 소프트웨어 문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부분에서는 아직은 테슬라와의 격차가 상당하다.
다만 테슬라는 수년 전 연간 2,000만 대 생산을 호기롭게 외쳤으나 작년부터는 그 말을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포기했다는 말도 없다. 다만 태국 공장 건설 중단과 멕시코 공장, 인도 공장 건설 지연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규모의 경제 달성이 그리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런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든지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내가 사용하는 자동차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아직도 달리는 즐거움은 자동차의 기본 가치다. 그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스타일링도 중요한 바이어스 포인트다.
자동차 디자인에 변화가 가능하게 한 것은 아우디가 사용하기 시작해 이제는 일반화가 된 LED 램프가 있다. 자동차의 얼굴이 획기적으로 달라졌다. 수많은 가능성이 등장했다. 지역과 나라에 따라 다르지만,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아이오닉5에 직사각형 램프 유닛이 채용될 정도다. 지금 자동차의 램프는 도로의 다른 사용자에 대한 의사 표시 도구로도 사용되고 있다.
인테리어에서도 그 이상의 변화가 추구되고 있다. 테슬라는 디스플레이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충격을 주었다. 많은 자동차회사는 벤치마킹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대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인터페이스의 변화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하이퍼 스크린과 BMW의 뒷좌석용 시어터 스크린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모든 자동차들은 디지털 콕핏으로 달라졌다. 그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 다만 그 표현 방식에서 각 브랜드가 그들만의 독창성을 다시 주장하고 있다. 자주 사용하는 버튼과 스위치를 배치하고 있다. 디지털 원주민들과 디지털 유목민들은 이에 대해 다르게 받아 들인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트렌드가 생길 수 있다.
그것과는 별도로 감성적인 측면의 변화도 동반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현대차그룹이 개최한 행사는 히트 테크데이(Heat Techday)였다. 말 그대로 열관리에 관한 것이다. 자동차 내부의 온도를 조절해 실내 공간을 쾌적하게 만드는 세 가지 기술을 공개했다. 물론 개발 중인 것으로 작년 나노 테크데이를 통해 소개했던 것 중 구체적인 발전이 이루어진 것도 있다.
그 첫 번째가 자동차 창문에 부착해 실내 온도를 크게 낮출 수 있는 나노 쿨링 필름이다. 전시장에서는 나노 쿨링 필름 시공 차의 센터 콘솔 부근 실내 온도는 36.0℃를, 그렇지 않은 차는 48.5℃를 기록하는 등 두 차량의 차이는 최대 12.5℃를 기록했다. 이 기술은 파키스탄 현지에서 실험했다. 정지 상태로 무더운 야외에서 필름을 부착하지 않은 자동차와 나노 필름을 시공한 자동차의 실내 온도는 20도 이상 차이가 났다고 한다.
두 번째는 복사열 난방시스템이다. 탑승자의 다리 부위를 둘러싼 위치에 복사열을 발산하는 발열체를 적용해 겨울철 차가워진 탑승자의 몸을 빠르게 덥히는 기술이다. 복사열 난방 시스템을 기존 공조 시스템과 함께 활용한다면 적정 온도에 도달하는 데 에너지를 17% 절감할 수 있고, 3분 안에, 하체에 따뜻함이 전달된다. 공조시스템의 바람과 달리 건조함을 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핵심 기술은 고온 필름형 발열체와 화상 방지 시스템이다. 110℃까지 열을 발생시키는 필름형 발열체가 각 모듈 안에서 열을 발생시키고 이를 감싸고 있는 직물 소재가 인체에 따뜻한 온도로 열을 조절해 원적외선을 방출한다. 또한 각 발열체 모듈에는 신체가 닿는 즉시 이를 감지하고 온도를 낮추는 화상 방지 시스템이 적용되어 혹시 모를 화상 위험을 없앴다.
운전석에는 스티어링 컬럼 아래쪽과 도어, 센터 콘솔 등 5곳, 동승석에는 도어, 센터 콘솔, 글로브박스 아래쪽 등 4곳에 설치된다. 특히 여름철에도 에어컨을 싫어하는 여성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는 금속 코팅 발열 유리다. 자동차 전면의 접합 유리 사이에 약 20개 층으로 구성된 금속 코팅을 삽입해 유리 스스로 열을 발생시켜 겨울철 서리나 습기를 제거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특히 48V의 고전압 시스템을 통해 영하 18℃에서도 유리 표면의 성에를 5분 이내에 완전히 제거할 수 있어 기존 내연기관차 공조 시스템과 비교해 약 10% 더 적은 전력으로 최대 4배 빠른 제상이 가능하다.
이번에 소개된 기술들은 모두 개발 중인 것들이다. 특허 출원된 것으로 앞으로 출시되는 신차에 적용할 예정이다. 다만 나노 코팅 필름의 경우 계절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어 On/Off 기능을 채용할지 등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한다.
전기차 시대 이전에 프리미엄 브랜드의 조건은 헤리티지와 성능, 혁신성, 희소성, 독창성, 프리미엄 마케팅이었다. 그래서 BMW는 달리는 즐거움을, 메르세데스 벤츠는 품위를, 아우디는 기술을 통한 진보를, 볼보는 안전을, 토요타는 품질을 슬로건으로 마케팅을 해왔다.
100년만의 대전환이라고 하는 시대에는 이 조건이 달라질 것이다. 그 조건을 설정하고 주도하는 메이커가 소비자들에게 인정을 받는다면 충성도가 달라질 것이다. 충성도가 높아지면 판매가 증가하고 수익성이 높아진다. 그로 인해 영업이익이 상승한다. 그러면 다시 투자가 가능하고 새로운 단계로 진화할 수 있다.
지금은 과거의 명성에 기댈 시대는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이 테크데이를 통해 소개하는 다양한 신기술들이 눈길을 끄는 것이다. 이 시대 사용자들이 자동차 안에서 어떤 경험을 할지에 대해 디지털 콕핏은 중요하다. 그것 말고도 다양한 조건들이 있을 것이다. 이번에 소개된 열관리 시스템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소개될 새로운 접근법이 사용자들에게 받아들여진다면, 다시 말해 새로운 시대의 상품성과 제품력이 높아진다면 브랜드 가치도 그만큼 상승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지속가능성의 핵심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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