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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임금님과 대통령의 승용차는 처음부터 캐딜락 (상)

글로벌오토뉴스 조회 수686 등록일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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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고종 어차 캐딜락
◉ 임금님의 첫 자동차
우리나라 정부 수뇌의 공식용 차는 처음부터 캐딜락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1903년이었다. 이해 봄 우리 궁궐에 뜻 깊은 경사가 있었다. 조선조 5백년 역대 임금 중에서 고종만큼 오랫동안 옥좌를 지킨 임금도 없었다. 국내외적으로 다사다난한 사건들을 수 없이 겪은 고종이었지만 큰 병고 없이 건강한 몸으로 40년 동안 임금의 자리를 지켜왔다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어서 위로잔치인 `칭경예식` 때 고종 어용으로 미국서 자동차 한 대를 도입하기로했다.

이렇게 하여 탁지부(재무부) 대신 이용익은 미국 공사인 엘런을 불러 자동차 도입을 주선하도록 부탁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들여온다는 이 자동차는 때를 맞추지 못하고 칭경예식이 끝난 4개월 후에 선편으로 도착했던 것이다. 미국에서 들여왔다는 고종의 첫 어차는 캐딜락이라고 하는데 지붕도 창문도 없는 원시적인 4인승 오픈카였다. 임금님이 탈 수 있는 뒷좌석은 후부에 문이 달려 뒷 꽁무니로 오르내리도록 만든 불편한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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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고종어차 다임러

그런데 자동차는 들어 왔지만 임금님의 자동차행차는 거의 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임금의 행차는 법도를 갖추어 장엄해야 하는데 자동차 하나만 달랑 타고 납신다는 것은 경망스럽다는 수구파 대신들의 거센 반대로 고종은 잘 타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어차는 궁궐 안 한쪽 구석에 방치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대궐을 출입하던 궁인들의 가족들이나 상인들이 이 자동차를 보고 `궁궐 안에는 귀신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는 쇠 망아지가 있다`는 소문만 서울 장안에 퍼졌을 뿐 백성들은 고종이 어차를 타고 외출하는 것을 직접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1904년 2월 일본이 일으킨 노일전쟁 북새통에 고종의 첫 번째 어차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고 전한다.

그 후 민족 치욕의 한일 합방 1910년, 초대 총독으로 부임해 악명을 떨친 한 데라우치(寺內正毅)는 자동차를 들여와 타고 다니며 뻐기고 싶었으나 자기 혼자만 타기가 미안했던지 우리 왕실을 부추겨 고종의 어차도 같이 들여오도록 하여 체면을 세우려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당시 군왕이 탈 수 있는 리무진을 만들던 영국의 다임러(Daimler)회사에 고종의 어차를, 위슬리(Wesley) 회사에 총독용을 각각 주문해 1912년에 도입했던 것이다. 이 중에서 고종의 다임러 리무진은 숱한 고난의 세파를 뚫고 지금까지 108년간 보존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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