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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자동차의 국적 - 세계화 시대에도 브랜드의 국적은 살아있다

글로벌오토뉴스 조회 수383 등록일 2018.10.08


지금의 자동차산업은 20세기의 그것과는 크게 다르다.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은 판매되는 곳에서 생산한다는 구호로 전 세계 곳곳에서 현지 생산을 하고 있다. 많은 글로벌 플레이어들은 자국 내에서보다 해외 생산이 더 많다. 때문에 물리적인 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국적 구분은 큰 의미가 없어졌다. 판매되고 있는 제품도 20세기에 비하면 독창성이 많이 희석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브랜드 파워는 원산지 국가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어디에서 생산하든지 원산지 국가의 이미지를 살리려 하고 있다.

글 / 채영석 (글로벌오토뉴스 국장)

자동차는19세기 말 유럽에서 태어나 20세기 중반 미국에 의해 지배되었고 20세기 말에는 일본에 의해 좌우됐다. 대량생산 기법과 모델체인지, 브랜드 다양화 등으로 자동차를 대중화한 포드와 GM으로 인해 미국은 20세기 중반 인류 역사상 최대의 경제 부흥을 이루었다. 미국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부를 키웠고 그 과정에서 1950년대까지 미국산(Made in U.S.A) 자동차가 전 세계 자동차의 80% 이상에 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9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은 자동차산업의 주도권을 바꿔 놓았다. 경제성이 높은 중소형차에 집중한 일본산(Made in Japan)차의 판매가 급증했다. 1980년 일본산 자동차가 미국산 자동차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자동차의 국적은 완성차가 생산된 나라로 분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경제 성장을 경계해 통화전쟁을 벌이던 미국이 자동차에 대해 통상마찰을 제기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일본 자동차회사들은 현지 생산이라는 절묘한 타개책을 내놓았다. 미국 등 일본이 아닌 지역에서 일본제(Made by Japan)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대부분의 자동차회사들은 생산 시설을 해외로 확대했다. 자동차산업의 세계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은 전 세계 자동차 생산의 약 1/3가량이 일본제다. 일본산은 1,000만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해외 생산 일본제 자동차는 1,800만대에 육박한다.

동시에 거대 자동차회사들의 규모는 연간 1,000만대 수준까지 확대됐다. 미국은 통화전쟁을 통해 일본의 경제 대국으로서의 길을 막는 데는 성공했으나 기업들의 덩치는 상상을 초월할 수준으로 확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셈이다. 더불어 자동차산업의 국적에 대한 의미를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세계화는 두 가지 화두를 던졌다. 품질과 독창성이다. 세계화라는 명분으로 규모화를 추구했지만 그로 인해 품질관리에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지금 사상 초유의 리콜 문제로 자동차업계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앞으로 이 문제의 해결 여하에 따라 경쟁력이 좌우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각 브랜드의 독창성이 약해지고 있다. 20세기만 해도 미국의 GM 이 모델체인지라는 기법을 동원하면서 자동차의 얼굴은 새 모델이 나올 때마다 매번 달라졌었다. 주기적으로 얼굴을 바꿔 신선함을 강조한 것이다. 일본 자동차회사들은 그 모델체인지 주기를 4년 전후로 짧게 하면서 신차효과를 무기로 판매대수를 크게 늘리는데 성공하며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반면 독일제 자동차들은 성능과 기술력 등을 바탕으로 강한 독창성을 내세워 고가 브랜드를 육성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을 형상화한 것이 BMW의 키드니 그릴과 메르세데스 벤츠의 세 꼭지 별, 아우디의 네 개의 원을 중심으로 한 앞 얼굴이다. 소위 말하는 패밀리룩은 독창성을 위한 중요한 소구로 자리잡았다. 렉서스와 인피니티도 일본 고유의 문화를 반영한 차만들기를 하고 있지만 독창성을 위해 브랜드 고유의 얼굴을 만들었다. 기아자동차의 타이거노즈도 같은 맥락에서 등장했다.

오늘날 세계적인 붐이 일고 있는 크로스오버와 SUV의 스타일링 디자인의 흐름도 독창성이 많이 희석되어 있다. 독일차와 미국차의 주행성은 여전히 차이가 있고 일본차와 한국차의 분위기는 분명 다르지만 들여다 보면 많은 부분이 비슷해져 있다.

그 배경에는 부품의 글로벌 소싱이 있다. 예를 들어 폭스바겐은 연간 1조원에 달하는 한국산 부품을 조달해 자동차를 생산한다. BMW와 메르세데스 벤츠도 6천~8천억원에 달한다. 포르쉐에 한국타이어가 장착되고 있고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의 디지털 계기판은 LG전자가 만든 것이다. 물론 한국산 부품도 원천 기술은 다른 나라인 경우가 많다. 같은 부품이라도 지역에 따라 다른 부품업체의 것을 사용하기도 한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BMW는 죠그셔틀 모양의 다이얼로 내비게이션을 비롯한 각종 편의 장비를 조작하는 아이드라이브(iDrive)라는 장비를 선보이며 디지털 시대를 선도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ABS와 에어백을 비롯한 각종 안전장비를 개발해 세계화시켰다. 아우디가 가장 먼저 사용하기 시작한 LED램프도 이제는 자동차 앞 얼굴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될 소구로 자리잡았다.

문화적인 세계화도 있다. 컵 홀더는 테이크 아웃 커피와 드라이브 인 스루 문화를 유행시킨 미국의 산물이다. 지금은 모든 자동차회사들이 운전석 오른쪽, 혹은 동승석 앞에 컵 홀더를 만들고 있다. 세계화는 디자인과 성능의 상향 평준화라는 긍정적인 효과도 낳았다. 반면에 각종 버튼과 스위치의 위치와 모양이 비슷해져 특별한 맛이 줄었다.


그리고 지금 자동차산업의 중심은 중국으로 옮겨 가고 있다. 2017년 전 세계 자동차 생산 및 판매의 약 1/3이 중국에서 이루어졌다. 중국시장은 아직 완전히 개방되지 않았다. 중국산(Made in China)차가 대부분이고 수입차는 120만대 전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중 70%는 중국산 독일제와 일본제, 미국제, 한국제 자동차가 차지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모두가 50%를 넘지 못하는 지분을 통한 합작회사에 의한 것이지만 중국 정부는 그 규제를 풀기로 했다.

중국 시장이 커지면서 차만들기도 달라지고 있다.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중국의 자동차 소비자들을 위한 차만들기를 하고 있다. 큰 차를 선호하는 특성을 반영해 축간거리를 확장한 모델을 만들고 있으며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취향을 노려 크롬 도금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운전석과 동승석 사이에 있는 수납공간 앞 부분에 별도의 티슈 홀더를 만든 것도 중국의 소비자들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머지 않아 대부분의 자동차들은 티슈 홀더를 추가하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 지리자동차의 소유이지만 스웨덴 브랜드인 볼보의 행보가 주목을 끈다. 볼보는 수년 전 자동차의 뒤 번호판 아래 문구를 Volvo for Life에서 Made by Sweden으로 바꾸었다. 볼보는 스칸디나비안풍의 디자인을 비롯해 북구의 신화에 등장하는 토르의 해머를 전조등의 디자인으로 채용하고 있다. 변속기 손잡이를 스웨덴의 크리스탈 유리기업 오레포스제로 만들기도 했다. 더 나아가 차 외부에 실내 곳곳에 스웨덴 국기를 달고 있다. 스웨덴이라는 국가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재규어랜드로버도 품위와 스포츠세단의 이미지가 특징인 영국풍 디자인으로 독창성을 강조하고 있다.

자동차의 대중화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미국의 포드가 살려 내지 못한 볼보와 재규어랜드로버는 지금 중국과 인도 기업의 소유로 넘어가 급성장하고 있다. 달라진 점은 생산(Made in)이 아니라 자동차를 개발한(Made by) 원산지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완성차의 글로벌 소싱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산차의 세계화가 시작됐다는 얘기이다. 캐딜락과 폭스바겐은 중국산차를 수출하고 있고 볼보 S90은 중국에서 생산된 차량이 전 세계시장으로 수출되고 있다. 초기에는 시장에 따라 반응이 다를 수 있어 저항에 직면할 수도 있겠지만 임금상승으로 비용 압박이 거세지면 다음 상황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여전히 자동차산업은 ‘저먼 엔지니어링(German Engineering)을 배경으로 하는 독일제와 ‘모노츠쿠리(물건 만들기라는 일본어)’를 바탕으로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일본제가 주류다. 하지만 세계 최대 시장 중국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환경으로 새로운 경쟁력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높은 품질과 강한 독창성이 그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다.

(*이 기사는 2018년 8월 16일 매일경제신문에 기고한 글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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